[Epilogue]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념전 《바다는 가라앉지 않는다》 후기 <불편하고 유연하게>

writing 2020년 3월 19일

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몸을 늘이고, 접고, 꺾고, 바로 세워 유연하게 만들고 싶었다. 세월호 5주기 추념전 <바다를 가라앉지 않는다>를 마친 후 뇌리에 가장 선명하게 남은 생각이었다. 몸이 굳어있다고 느낀 지는 제법 오래되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발을 헛디뎠을 때, 빠르게 오는 자전거를 피할 때 자주 뻣뻣해지는 몸을 마주했다. 그대로 꼬꾸라지는 몸을 볼 때마다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짐은 금방 잊혔다. 한동안 쉬었던 요가를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장현준의 퍼포먼스 <나머지/방향성>을 본 직후였다. 희미한 빛 아래서 들리는 “나는 안락합니다” 대사에 털이 쭈뼛 섰고, 그가 불안정하게 균형을 잡을 땐 설명하기 힘든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그렇게 퍼포먼스가 끝나고 조명이 모두 켜진 뒤에야 ‘긴장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선명해졌다.

처음 요가를 할 때 가장 어려웠던 건 목과 어깨의 힘을 빼는 일이었다. 거북목으로 노트북을 보는 것이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는 딱딱하게 굳은 어깨의 힘을 좀처럼 빼지 못했다. 복부에 힘을 줄 때에도 목이 함께 긴장되었고, 심지어 발가락를 펼칠 때에도 힘을 잔뜩 머금은 어깨를 늘어트리지 못했다. 이렇게 힘을 준 상태에서는 한 자세를 오래 유지할 수 없었다. 몸은 금방 균형을 잃었고, 쉽게 지쳐버렸다. 요가를 마친 후 매트에 누워 숨을 고를 때엔 온 몸이 괴로워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에야 나의 뻣뻣한 몸은 힘 빼는 방법을 겨우 터득할 수 있었다. 드디어 선생님의 카운트가 끝날 때까지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가끔은 조 금 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소리 없는 쾌재를 불렀다.

세월호 5주기 추념전 <바다는 가라앉지 않는다>를 준비할 땐 요가를 한동안 쉬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목과 어깨에 힘을 주고 노트북을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의 절반 이상을 생활하고
있었다. 그렇게 뻣뻣할 대로 뻣뻣했던 나는 세월호 5주기 추념전 《바다는 가라앉지 않는다》를 함께하며 더 경직되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만든 긴장이었다. 5년 동안 쌓아놓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부채감을 이제야 덜어내는구나 싶었고, 마음의 빚은 부담을 낳았다. 전시를 준비하던 중 누군가가 물은 “할만 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꼭 잘 해야한다”고 답했었다. 내게 《바다는 가라앉지 않는다》는 세월호 참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첫 과정이었고, 그렇기에 이 전시를 잘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내 자신이 많이 힘들 것 같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팽목항에 도 못 가봤는데’, ‘마음이힘들다는 이유로 관련 소식들을 피했던 적도 있는데’, ‘가방에 함께 하던 노란 리본은 어느 날부터사라져 버렸는데’하는 생각은 ‘이번 전시를 반드시 잘 해야한다’는 다짐으로 귀결되었다.

세월호 참사 후 맞이하는 다섯 번째 4월, 전시는 안산과 서울에서 순차적으로 열렸다. 전시장에는 유독 오랜시간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평범한 청소년들의 모습 앞에서, 그 흔한 바나나 우유 앞에서 터져나온 울음들이 있었다. 강연과 공연은 지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월호 참사 옆 혹은 뒤에서 함께 고민해온 사람들과 함께했다. 진태원은 그의 강연 <슬픔에서 사랑으로>를 통해 세월호를 바라보는 감정이 슬픔에서 사랑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말했다. 슬퍼하기만 한다면 우린 그 이상을 상상할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고, 이는 곧 우리의 존재론적ㆍ윤리적 위치를 규정하는 것 역시도 세월호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뜻했다. 장현준은 퍼포먼스 후 대화에서 세월호 참사 직후의 작품과 지금의 작품을 말하며, 이젠 5년이 흐른 만큼 지금의 상황에 맞추어 긴장을 내려놓고 세월호 참사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란은 <당신이 와서 기뻐요: 고통 이미지 재현에 관하여>에서 시끄럽던 시간이 지나간 그 이후의 모습과,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상황들을 들여다보는 자세에 대하여 설명했다.

기획팀이라는 이름으로 전시장을 지키고 강연과 공연을 모두 참석했던 나는, 나의 ‘잘해야 한다’는 경직된 마음이 얼마나 쉬운 생각이었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번 전시를 최선을 다해 만들면 세월호에 대한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마음은 ‘다음’이 없는 생각이었다. 5년간 지녔던 부채감을 이번 전시로 한 번에 내려놓고자 하는 비겁함은 아니었지만, 이 한 번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그 이상을 상상하지 못했다. 애도를 넘어서서 세월호를 바라보고자 하는 전시를 만들고 있었음에도 이번 전시 이후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바다는 가라앉지 않는다》에서 하고 싶던 이야기 중에는 세월호 앞에 ‘아직도’라는 말을 붙여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가 있었다. 아직도라고 할 수 없다고,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나는 마치 앞으로가 없을 것처럼 이 한 번의 전시를 앞에 두고 경직되었다. 요가매트 위에서 어떻게든 견뎌보겠다며 목과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있듯이 말이다. 물론 이번 전시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향한 부채감을 덜어내고자 하는 생각 역시 완벽한 오산이었다. 세월호 참사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많은 불편함을 만났고, 깊숙하게 알면 알수록 마음의 짐은 쌓였다. 전시가 끝나갈 즈음에야 세월호를 말하며 결코 편해질 수 없다는 것과 그다음이 있기 위해선 유연해져야 한다는 걸 알았다. 전시가 모두 끝난 후 어느 날엔 요가를 다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요즘엔 숨 쉬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언제 어떻게 내뱉고 들이마실지에 집중하며 몸을 움직인다. 긴장을 내려놓아야 숨이 가다듬어진다. 덜덜 떨리는 한쪽 다리로 몸통을 지탱할 때, 나가고 들어오는 숨에 집중하다 보면 몸이 차차 차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중심을 잡은 후엔 억지로 힘을 주지 않아도 자세가 유지된다. 숨과 몸의 균형이 잡혔을 때가 되면 비로소 ‘가능한 오래 버티고 싶다’는 욕심을 내볼 수 있다. 세월호를 말할 때에도 제 풀에 지치지않고, 무너지지 않게, 마음과 몸을 유연하게 만들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지켜보고 싶다. 아직도라는 말이 무색해질 만큼 계속하여 세월호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불편함을 마주하고 결국 부채감을 쌓아가면서도 기억을 멈추지 않기를 바라본다. 불편하고 유연하게, 목과 어깨의 힘을 빼고 숨을 고르게 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