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Preface] 김소정 개인전<가는 응시와 단단한 선>전시 서문 「가는 응시와 단단한 선」

writing 2020년 8월 28일

가는 응시와 단단한 선
김소정 개인전 《가는 응시와 단단한 선》 전시 서문

의외의 것들이 결정적일 때가 있다. 표지가 마음에 들어 책을 산다거나, 식당을 지키는 고양이가 귀여워 그곳에서 식사한다거나, 가깝다는 것 하나만으로 헬스장을 결정하는 등, 본질 옆에는 그 자체로 타당한 이유들이 있다. 작품에서 본질을 찾을 때, 대부분의 눈은 작업의 내부에서부터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려진 상을 지나 그림을 둘러싼 프레임을 넘을 때 눈은 탐색을 멈춘다. 더이상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소정의 눈은 그림을 둘러싼 붉은 선에서 머물렀다. 굵기에 따라 세선(細線) 혹은 태선(態線)이라 불리는 붉은 프레임은 그림과 그 외부를 가른다. 작품의 일부라기엔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않은 붉은 선은 주로 형식적이면서 장식적인 요소로 활용되어왔다. 칸트(Immanuel Kant)가 만약 이 붉은 프레임을 보았다면 그는 그것을 본질이 아닌 본질 바로 옆의 부수적인 요소, 파에르곤(parergon)이라 칭했을 것이다. 칸트는 작품의 틀을 파에르곤이라 말하며, 그것은 스스로 근본적인 주제가 되지 못하는 부차적인 요소로만 기능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데리다(Jacques Derrida)는 그와 생각이 달랐다. 그는 작품의 외부에서부터 눈을 움직였다. 벽에서부터 보기 시작하니 그림의 틀은 그림을 향해가는 작품의 일부가 되었고, 이는 곧 무엇이 작품이고 무엇이 배경인지의 구분, 즉 본질과 비본질의 경계를 흐트렸다. 데리다는 이러한 현상을 작품의 틀이 두 개의 배경(혹은 두 개의 작품)과 관계 맺을 때 서로 다른 배경(작품) 속으로 이동되어 그 위치가 뒤섞이며 합쳐진다고 설명한다. 결국 작품의 틀은 작품과 작품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되 단단히 존재하며 작품의 본질과 비본질을 해체시키는 결정적인 힘이 된다.

김소정이 주목하는 붉은 프레임 역시 그러하다. 작품의 범주를 보여주는 동시에 작품의 주된 일부가 되어 작동한다. 종이 한가운데서부터 눈을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붉은 선은 그림의 바깥처럼 보이겠지만, 외부에서부터 눈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림의 시작이 된다. 나아가 이 움직임이 반복될 때 무엇이 정말 작품인지, 무엇이 작품 속 주된 주제로 작동하고 있는지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 본질과 비본질을 불명확하게 만드는 붉은 선의 역할, 이는 김소정이 동양화를 바라보고 있는 태도와 유사하다. 동시대 미술에서 장르의 경계는 허물어졌고, 매체로 작가를 구분하는 일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되었다. 작가들은 마치 그들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원하는 노래를 고르듯, 자신의 선호와 경험, 그리고 축적된 데이터의 추천에 따라 그때그때 적합한 매체를 선택한다. 더이상 특정 매체가 지닌 정수를 모두 샅샅이 훑는 것만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동양화로 작품을 한다고 할 때, 그 선택의 이유는 단지 먹의 향이 좋아서, 작품에 활용할만한 새로운 요소들이 많아서, 혹은 작가의 성향과 가장 잘 맞아서와 같은, 누군가는 본질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요인들로부터 기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동양화가 동시대의 미술에서 독해되는 방식은 시대의 흐름에 상응하지 않는다. 장르의 구분이 없어졌다고 말하면서도 동양화의 특수성을 구분한다거나, 서양에 비하여 탐구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대하듯 동양화를 설명하기도 한다. 아직도 동양화를 말할 때 사군자를 떠올리며 좁은 범위로 해석한다거나, 동양이라면 응당 전통성에 기반해야 함을 필수요건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더는 웃음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 앞에서 김소정은 스스로 붉은 선이 된다. 그는 직접적으로 동시대 동양화의 지형도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진 않지만 단단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내부와 외부의 경계에 선다. 그리고 안과 밖을 가늘게 응시한다. 김소정은 “전통”과 “전통이 아닌 것”, “동시대적인 것”과 “시대착오적인 것”, “동양화”와 “동양화가 아닌 것”, “내용”과 “형식” 사이의 붉은 선이 되어 안으로부터 움직이는 눈동자와 밖에서부터 움직이는 눈동자의 이동을 살핀다. 그렇게 경계가 허물어지는 때를 기다린다. 데리다는 파에르곤을 본질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경계로 존재하다 스스로 사라지며, 사라지는 순간 강력한 에너지로 본질과 비본질의 구분을 흐린다고 말한다. 김소정은 동시대 미술의 흐름과 동시대 동양화의 흐름 사이에서 차분히 자리를 지키며 힘을 발휘할 순간을 탐색한다.

어떤 의외의 것들은 쉬이 보이지 않는다.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을 바라보았을 때에서야 보이기 시작한다. 김소정은 동시대 동양화의 양가적인 해석을 말하기 위해 눈에 띄지 않는 주변의 것들을 살핀다. 어디선가 장식적인 요소로 사용되었던 부수적인 것들에 눈을 멈추고 그것을 작품의 주된 일부로 삽입한다. 김소정의 붉은 선은 마치 작품 바깥에 위치한 듯 보이지만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어느새 작품의 단단한 일부가 된다. 그렇게 붉은 선은 작품 속 내용과 형식의 역할을 전복시키고 동시대 동양화를 가로지르는 이분법의 벽을 허문다. 의외의 것은 더이상 의외의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타당한 결정적인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