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부디 그대가 사랑하던 하나님 곁으로 갔기를

writing 2020년 3월 4일

빨래는 30분 남아있었다. 마음이 급했다. 당장 출발하고 싶은데, 엄마는 혹시 모르니 3-4일 집을 비워도 괜찮도록 정리를 하고 출발하자고 했다. 그래도 30분을 기다릴 순 없어 급히 세탁기를 멈추고 물을 가득 머금은 옷을 꺼내 빨랫줄에 널었다. 축 늘어진 옷들에서 물이 뚝뚝 흘렀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이브였다.

 

대략 1시 정도였을 것이다. 검은 옷과 속옷, 세면도구를 챙겨 차에 올랐다. 서울에서 대전, 약 2시간의 여정 동안 우린 세 번의 전화를 받았다. 모두 어디 정도 왔냐는 물음이었다. 별 다른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전화가 자꾸 온다는 것은 급하다는 신호이다. 나는 불안함을 가득 품은 채 아빠에게 조심해서 운전하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모는 우리에게 5층으로 오라 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작은 삼촌을 만났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소식 들었지..?”
잠시간의 정적 후, 엄마의 울음소리가 엘리베이터를 채웠다. 할머니는 우리가 서울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었다.

할머니는 우리 가족을 위해 아직 병실에 있었다. 눈을 꼭 감고 있었지만 몸엔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그냥 잠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엄마와 나는 할머니를 어루만지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예쁘지 않냐고 얘기했고, 우린 그 말에 또 한 번 소리를 내며 울었다.

 

가족들은 우리에게 임종을 지킨 사람이 할아버지와 큰 이모뿐이라며 너무 낙심하지 말라고 했다. 전날까지도 가족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편안히 하루를 보냈기 때문에 모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전날 밤 저녁, 종종 그랬듯 심장이 크게 뛰어 입원했다고 했다. 밤새 앓았다고는 했지만 아침엔 집에 다녀온 할아버지께 ‘어젯밤에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어~”라고 말할 만큼 의식이 맑았더랬다. 그러다 잠시 눕혀달라던 할머니는 갑자기 숨이 가빠지며 2시간 정도 의식을 잃었다. 처음엔 다들 잠드시는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2시간 동안 할머니는 의식을 찾지 못한 채로 점차 숨이 차분해졌다. 그리고 곧 할머니가 그토록 기도하던 하나님의 곁으로 떠났다.

 

빈소에 도착해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처음 보았다. 언젠가 교회에서 영정사진 봉사가 있어 찍으셨다고 한다. 사진 속의 할머니는 너무도 젊었다. 20년은 전에 찍은 영정사진을 본 할아버지는 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살 줄은 몰랐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말에 우린 살짝 웃었다.

 

장례식은 누군가의 일터이니 만큼 일사불란하고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3일은 금세 지났고 마지막 날 아침, 할아버지는 할머니께 이별의 편지를 적었다. 우린 모두 그 편지에 눈시울을 붉혔다.

 

할아버지의 울음은 가장 무거운 슬픔이었다. 장례 첫날, 할아버지는 할머니와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크게 우셨다. 발인을 마치고 온 날에도 할아버지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우린 그 마음을 가늠할 수 없어 뒤에서 울었다.

 

장례 기간 동안 수많은 화환이 도착했다. 대부분 할아버지나 사위들에게 온 화환이었다. 꽃을 좋아하는 할머니에게 많은 꽃이 도착해서 좋았지만, 특히나 출판사에서 온 화환이 그 사이에 있어 참 좋았다. 북노마드가 보낸 그 화환은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장모님을 위한 꽃이 아닌 정숙진 작가를 위한 꽃이었다.

 

난 종종 할머니와 쓴 우리의 책이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4년 전, 무작정 쓴 글과 그림들이, 괜한 아쉬움을 불러일으켜 어느 날부터 책을 펼쳐보지 않았었더랬다. 그러다 할머니 마지막 가는 길, 오랜만에 다시 책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출판사에 남은 모든 책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장례식에 온 사람들은 한 손에 할머니의 삶의 기록을 들고 떠났다. 혹자는 빈소 한 구석에 앉아 한참 동안 책을 읽었다. 할머니의 마지막 직업이 작가인 것은 참 좋은 일이었다. 이것만으로도 <그때, 우리 할머니>를 더 이상 아쉬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5쇄부터는 저자 소개에 할머니의 타계 소식이 더해질 것이다. 나는 증쇄가 나오기 전에 나의 최고의 공동저자이자 내가 아는 가장 멋진 사람인 정숙진 여사의 소천을 전하고 싶었다. 잠시 떠났던 여행도 이 글을 쓰기 위함이었다. 여행하는 내내 생각을 정리해보았지만, 결국 이렇게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글을 시작하고 글을 마친다. <그때, 우리 할머니>의 공동저자이자, 나의 사랑하는 할머니 정숙진 여사는 2018년 12월 23일 평안 속에서 세상을 떠났고, 그가 하늘나라에서도 맑게 웃으며 평온하길 바란다.
할머니,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