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동치미와 열무김치

writing 2019년 4월 29일

1997년 겨울, 6살의 윤여준은 배가 만삭인 엄마를 위하여 아침밥을 차린다. 아침 일찍 눈을 비비고 일어나 밥을 푸고 국을 담고 반찬을 꺼내고 동치미를 썰다- 앗! 손이 베였다- 어린 여준은 당황하지 않는다. 혹여나 엄마가 잠에서 깰까 조심조심 까치발을 들고 반창고를 찾아 손가락을 감싼 후, 다시 동치미를 썰어 그릇에 담는다. 그리곤 감동받을 엄마의 모습을 기대하며 안방 문을 연다.

나는 나의 6살을 이렇게 기억한다. 아마도 그 시절의 난 임신한 엄마의 모습이 신기했고, 곧 태어날 동생이 기다려졌으며, 엄마를 위하여 무언가를 했다는 그 뿌듯함이 대단하였기에, 그 날의 아침 밥상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고사리 손으로 차린 아침 밥상의 국은 데우지 않아 다시 냄비로 향해야 했고, 반찬은 너무 조금 꺼내어 다시 새로운 접시에 옮겨져야 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우린 그 어떤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때론 그 순간으로 그때의 나를, 우리를 기억하곤 한다.

오늘 아침, 나는 자고 있는 엄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옆에 누워 그 날을 기억하느냐 물었다. 엄마는 잊지 못한다 답했다. 나보다도 더 선명하게 그 날의 아침 밥상을 기억하고 있었다. 문득 6살의 윤여준이 기특했다.
그리고 또다시 문득, 나의 엄마에게도 잊지 못하는 어린 날의 추억이 있는지 궁금했다.

“엄마도 기억에 남는 어린 시절 추억 있어?”

뜬금없는 나의 질문에 엄마는 그게 언제 적 이야기인데, 기억이 있겠느냐며 손사래를 친다. 아무렴- 하는 마음으로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그녀가 눈을 감은 채 입술을 떼었다. “그때가 초등학교 때였을 거야 아마….” 나는 조용히 다시 몸을 뉘었다.

아마도 나의 엄마, 구미경이 10살 내지 11살 즈음되었을 때일 것이다. 초등학생 미경은 방학이 무척 기다려졌다고 한다. 아니, 방학보다 방학 때 사촌들과 함께 공주 큰집에서 보내는 그 생활이 기다려진 것이 맞겠다.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던 방학이 오면 그녀는 큰 어머니가 좋아하는 사탕 봉지를 두 손 가득 들고 큰집으로 향했다. 도착한 큰집에는 사촌들이 복작복작 모여 그녀를 맞이해 주었다.
큰집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새로웠고, 매일매일이 흥미로웠다. 미경은 사촌들과 함께 모여 군대에 있는 가장 큰 오빠에게 위문편지를 쓰고, 날씨가 좋은 날엔 오두막에 올라가 그림을 그리고, 담장 옆에서 불쏘시개로 불장난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여름에는 미루나무가 주욱 늘어 선 시냇가에서 고기를 잡았고, 겨울에는 볏짚 안에 숨어 숨바꼭질을 했다. 미경은 그렇게 그 시절의 계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마당 앞 커다란 나무의 그네에서 느꼈던 바람을 이야기하며 미소 짓는 것을 보았다. 지금의 미경이 기억 속에서 어린 날의 미경을 만났나 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흥미진진했던 것은 다 함께 모여했던 카드놀이이다. 열 살 내외의 아이들은 매일 밤 모여 큰 어머니가 아침마다 나누어 주시는 사탕을 걸고 카드놀이를 했다. 그 시절엔 ‘뽕’이라는 게임이 유행이었는데, 아이들은 삼삼오오 팀을 이루어 뽕을 하였고 진 팀은 사탕을 내놓거나 시커먼 밤중에 구멍가게를 다녀오는 벌칙을 받았다. 그것이 그렇게 꼬숩고 재밌을 수가 없었다. 또, 욕심이 많아 여우라고 불리던 사촌언니와 장난기가 많던 토끼라는 사촌의 투덕거림은 게임의 흥을 더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곰 만 한 덩치의 아이를 왜 토끼라 불렀는지 의아하지만, 여우와 토끼의 아옹다옹은 모두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큰집에서 미경과 사촌들은 그렇게 하루를 꽉 채워 보낸 후, 다 같이 건너 방에 쪼르르 누워 꿈나라로 갔다. 아마 새어나오는 웃음에 모두 입술을 씰룩이며 잠이 들었으리라-

나는 그 시절의 미경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지금 나의 옆에 누워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오십 대의 미경, 나의 엄마의 표정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 옛날을 어떻게 기억하겠느냐며 나무라던 엄마는 어느새 술술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곤 말을 마치며, 큰집에서 큰어머니가 해주시던 열무김치와 보리밥이 생각난다 하였다.

그 날 아침, 나는 엄마에게 열무김치와 보리밥을 차려주고 싶었다. 다시 어린 날의 여준으로 돌아가 어린 날의 미경이 즐겨 먹었다는 그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물론 우리의 수다로 오늘 아침 밥상의 기회는 지나갔지만, 어느 날 나는 다시 한번 아침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 엄마가 깰까 조심하며 열무김치와 보리밥 한 상을 차리리라. 부디 그 순간도 엄마의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기를 바라며-

(2017년 4월 월간에세이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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