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린, 윤혜준 쇼케이스 《두 원 사이의 수영장》

curating, 미분류 2020년 3월 17일

두 원 사이의 수영장
일시: 2019.09.20-2019.09.27
장소: 한국예술종합학교 복도갤러리
작가: 윤혜린, 윤혜준
기획: 윤여준
주관: 한국예술종합학교, 복도갤러리

3번째 알람이 울렸다. 이젠 정말 일어나야 한다. 머릿속으로 30초를 센 후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눈을 감은 채로 이를 닦는다. 칫솔을 움직이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으니 어제 들은 노래가 떠오른다. 한 구절의 후렴구가 구간반복되고 있다. 거품을 가득 문 채로 따라 부르다 다음 구절이 생각나지 않아 입을 행궜다. 누군가 아침에 먹는 유산균이 몸에 좋다고 했다. 말을 뱉은 사람이 누구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데, 어느새 아침의 유산균은 평생의 숙제가 되어버렸다. 흰색 가루를 목구멍에 털어 넣고 물을 마신다. 테이블 앞에 서서 아침을 먹을지 말지 한참을 고민한다. 지난주엔 밥을 차려 먹고 나갔다가 속이 안 좋았었다. 그렇다고 빈속으로 가자니 좀처럼 힘이 없을 것이 분명하다. 고민 끝에 바나나를 하나 챙겼다. 밤사이 비가 왔나 보다. 어제 널어놓은 빨래들이 아직 물기를 머금고 있다. 조금 축축하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다. 거둔 빨래를 가방에 넣으려다 한쪽 손에 들고 나선다.

이른 아침, 동네는 아직 한산하다. 건널목 앞 프렌차이즈 빵집만이 일찍 하루를 시작했다. 국내가요 top100이 작게 흘러나오고 있다. 골목으로 들어서니 행선지가 같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5개월 동안 매주 만나고 있지만 밖에서는 서로 인사하지 않는다. 같은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 함께 섰을 때, 그제야 비로소 인사를 건넨다. 한 달에 일주일, 생리를 할 때 빼고는 결석한 적 없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항상 이른 아침에 만난 것을 서로 놀라워하며, 오늘도 나왔느냐고 인사를 나눈다.

코팅이 벗겨지고 있는 회원증을 내밀면 숫자가 적힌 빨간 열쇠와 회색 수건을 받는다. 얼마 전 회색수건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따로 집에서 챙겨왔는데, 사용한 이후 젖은 수건을 들고 버스를 타는 것이 더 고역이라 잠자코 회색 수건을 쓰기로 했다. 매번 놀라는 것은 내가 이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모든 것을 끝내고 머리를 말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마 프렌차이즈 빵집에서 나오는 노랫소리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화장을 하는 사람들과 샤워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 사이에서 옷을 벗고 손에 들고 있던 축축한 수영복 속에 몸을 우겨 넣는다.

나는 수영장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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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원 사이의 수영장》은 윤혜린과 윤혜준의 첫 공동 전시이다. 본 전시는 같은 모부로부터 태어난 두 작가가 20여년을 함께 살고, 또 떨어져 살며 필연적으로 생긴 둘 사이의 교집합과 차집합을 말한다. 결코 겹쳐지지 않은 선을 지닌 각자의 원을 지닌 두 작가는 그 사이에 위치한 수영장을 통해 서로의 모습을 비추고 서로의 접점을 찾는다. 현재 이들의 수영장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하기,라는 튜브가 띄워져 있다. 윤혜린은 ‘시간’을 심해에 흐르는 염수호(brine pool)에 빗대어 보이게 만든다. 윤혜준은 실체가 된 공포가 일상공간에 침투하는 모습을 그린다. 시각예술의 주된 기능과도 같은 ‘보이게 만들기’가 엇비슷하면서도 명확히 다른 두 원 사이의 수영장에서 어떤 헤엄을 치게 될까. 우리는 수영장에 왔다. 하나의 문장을 서른한 개의 문장으로 길게 늘어뜨리며 도착한 수영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