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진 개인전 《VERTICES》

curating 2019년 4월 29일

문해진 개인전
VERTICES 접−점−들
2018. 12. 21 ~ 2018. 12. 31
서울시 동대문구 왕산로9길 24 3층(삼육빌딩)
기획. 윤여준, 문해진
글. 윤여준, 김은주, 콘노 유키, 여성,괴물–아키나, 희우
디자인. 나이스프레스
사진 촬영. 황예지
영상 기기. 올미디어
제작 도움. 제일목공, 스튜디오 얄라, 윤여준, 문해원
시트지 시공. 스튜디오 시우
설치 도움. 오민수
후원. 서울문화재단

#1. 신설동행 열차를 타기 위해 성수역에 내렸다. 곧 안내판의 연두색 열차가 녹색 선을 따라 ‘성수’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저 멀리 안내판 너머 빠르게 걸어오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이따금 나를 향해 돌진하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도 역시 그랬고, 나의 어깨 위 가방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람이 오면 피해야 할 거 아니야!”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말에 온몸의 털이 쭈뼛 선다. 눈에 힘을 준다. 그는 나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돌아섰지만 들으라는 듯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말을 읊조리고 있다.

#2. 언제나 그렇듯, 신설동행 열차엔 사람이 적다. 하지만 오늘도 임산부석엔 임산부일 수 없는 사람

이 앉아있다. 성수에서 신설동까지, 3개의 역을 지나야 하고 총 9분이 걸린다. 빈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켜고 뉴스를 본다. 오늘의 세계 뉴스엔 자신을 존중하지 않았다며 남편이 아내를 죽인 후 자살한 미국에 살던 한인 부부의 소식이 있다.1) 그 옆, 연관 기사 목록에는 2000년 이후 인도에서 마녀로 몰려 살해된 사람이 2,300명 이상이라는 기사가 있다.2) 성수에서 신설동까지, 3개의 역, 9분이 지나는 동안 나의 핸드폰 속에선 2300여 명의 여성이 죽었다.

#3. 모두가 내리는 신설동역, 역사를 나와 한참을 걸으니 회색 건물이 보인다. 회색 건물의 3층에서는 옅은 빛이 나오고 있다. 계단을 오르며 스친 벽엔 냉기가 서려 있었다. 3층에 들어서자 눈을 크게 뜬 요안느 모이(Jhoanne Moi)박사가 말한다.

반갑습니다.

이곳은 당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 짓기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그것들은 얄팍한 사실과 단단한 거짓으로 만들어졌습니다.”

#4. 형체를 알 수 없는 입체물들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모이 박사가 만든 것일까. 그가 모은 것일까. 혹 아무도 모르게 혼자 생겨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괴하지만 낯설지 않다.

책상 옆엔 아마도 모이 박사가 모은 것 같은 자료들이 놓여있다. 쇼케이스 위에 놓인 구조화된 기억의 흔적은 문서에 의해 고정되었다.4) 그 문서들은 하나의 증거가 된다. 그리고 그들은 연결된다. 마치 환생의 환생을 거듭하듯이.

그 순간에도 모이 박사는 계속 말하고 있다.

나는 그들의 일부인가 아닌가. 나는 여성인가 아닌가 마녀인가 아닌가 나는 괴물인가 아닌가. 나는 나 스스로를 내 자료에 넣어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어,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웃기다는 생각을 했지.

#5. 스크린 옆 계단을 올랐다. 꼭 요안느 모이 박사의 머릿속을 들어가는 것 같은 계단을 지나면 채광이 좋은 작은 공간이 나온다. 모이 박사가 집착적으로 연구했을 이 방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중첩되어 있다. 그곳엔 수많은 시간들이 집적된 헤테로토피아가 있다.

전시장을 나서는 벽면, 그곳에 걸린 액자에 눈을 마주쳤다.

아- 괴물이 보였다.

캐릭터들과 스스로를 계속 연결 지으려는 것을 의식하게 된 순간

어느 때보다도 자신을 의심하게 했어요.

#단단한 사실과 얄팍한 거짓

문해진의 개인전 <VERTICES>는 거짓과 사실의 중첩으로 구성된다. 전시장엔 문해진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요안느 모이라는 존재의 파편들이 놓여있을 뿐이다. 요안느 모이는 누구인가. 문해진의 아바타인가. 혹은 문해진이 요안느 모이의 아바타인가.

데이비드 조슬릿(David Joselit)은 아바타를 명목상의 정체성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취할 수 있는 인공보철물적 아이콘”으로 설명한다.5) 이때 아바타는 특정한 인격이나 집단과 동일시할 수 없는 존재를 말하는데, 이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특정 집단의 스테레오 타입, 즉 시민이 정체성을 사유재산처럼 소유해야 한다는 일방향적인 미디어의 가정에 도전한다.6) 그리고 그 아바타는 마치 정착하지 않은 정체성처럼 일부는 픽션이고 일부는 다큐멘터리다. <VERTICES>에서 요안느 모이와 문해진은 서로의 아바타가 된다. 그들은 정박하지 않은 정체성 위에서 실체의 진실성을 무력화시킨다.

이러한 스테레오 타입의 전복은 문해진의 주된 관심사이다. 문해진은 특정 시대상을 반영하는 미디어 속 여성이 어떻게 ‘만들어져’왔고 ‘소비되어’왔는지 탐구하고, 거꾸로 캐릭터들의 모습을 통해 시대상 비춰보기를 시도한다.7) 그리고 2017년부터 진행해온 <여성-괴물-캐릭터-프로젝트>를 통해 대중매체나 서브컬처(만화, 애니메이션, 2차 창작물 등 오타쿠 문화를 지탱하는 ‘서브컬처’매체들과 설화, 괴담이나 도시전설까지)에서 나타난 여성-괴물-캐릭터를 집착적으로 수집한다. 그리고 그는 여성 괴물(monstrous-feminine)들이 왜곡되어버린 세계에 역으로 침범할 수 있는 틈을 만든다. 문해진의 아카이빙 행위는 단순한 보관 형식이나 기억의 기록이 아니다. 이전의 관념화된 정보·기록에 대하여 새로운 관점을 부여하는 차원의 아카이빙이다.8)

그의 아카이빙에는 수많은 여성 괴물이 있다. 유럽에서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4세기 동안 마녀사냥에 의해 희생된 여성은 6만~10만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많은 여성을 ‘마녀’로 만들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면 많은 여성들은 사회적 규범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리고 남성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이유로 마녀가 되었다. 가령 모계사회에서 통치자의 역할을 했던 여성은, 부계사회가 되자 남성에게 위협적인 존재, 즉 마녀가 된다. 또한 여성 전문 치료사인 산파가 남성 의사보다 더욱 뛰어난 능력을 지니게 되었을 때, 남성 의사는 시기심을 느껴 산파를 마녀로 만든다. 그리고 아내로서의 역할(아이를 돌보는 역할)을 수행하지 않은 여성 역시 가부장적인 남성의 기득권에 대한 도전자로 읽히며 마녀가 되었다. 수백 년이 지나 21세기 우리의 앞에 등장한 사냥꾼들은 꾸준한 신조를 지닌다. 여전히 수세기 전의 여성의 규범을 제시하며, 그에 대항하는 여성에게 총을 겨눈다. 그렇기에 여성의 아름다움을 추종하면서도, 자신이 소유하지 못하는 아름다움은 ‘악’이 되며, 이를 통해 그들을 ‘꽃뱀’이라는 새로운 마녀로 상정하기도 한다. 그들이 말하는 그 뱀은 사실 가상의 세계에만 존재하며, 그렇기에 ‘네가 먼저 유혹했다’는 말은 그들의 머릿속에만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전시명 ‘VERTICES’는 ‘접점들’을 뜻한다. 서로 겹쳐지는 지점들의 집합. 본 전시는 수 세기를 거쳐 만들어지는 여성 괴물들, 그들이 이야기가 겹쳐지고 쌓여 단단한 힘을 만드는 과정을 드러낸다. 스스로 괴물이 된 여성들, 여성-괴물들, 괴물로 불리는 여성들, 이들은 서로 다른 세상 속에서 같은 삶을 반복하는 듯이 교묘한 교집합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그들의 중첩은 접점Vertex이 되고, 그 접점은 모여 쉬이 무너지지 않는 접점들Vertices이 된다.

<VERTICES>는 단단한 사실을 만들어 아직까지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단단한 거짓에 경고이자 선언을 한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 지으며 수많은 접점들을 찾아낼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괴물이 되는 것이 무섭지 않다고 말이다.

곧, 거짓은 얄팍해질 것이다. 사실은 단단하게 쌓일 것이다.

 

1) 조진우, “아내 총격살해후 자살 40대 한인교수 “아내가 날 무시…” 페북에 글 남겨“, 한국일보, 2018년 5월 9일자 기사.
2)  서민수, “[특파원 레이더] ’21세기 마녀사냥’ 인도에서 2천3백 명 피살”, MBC 뉴스, 2015년 10월 7일자 기사.
3)  브라이언 오 도허티, 『하얀 입방체 안에서』, 김형숙 역, 시공아트(2006) p.73.
4)  인공보철물적이란, prosthetic으로 접근할 수 없는 곳을 접근 가능하게 하고 그 내용을 실행시키는 다양한 기능으로 사용한다.
5)  데이비트 조슬릿, 『피드백·노이즈·바이러스』, 안대웅, 이홍관 역, 현실문화(2016), p.11.
6)  데이비드 조슬릿, 위의 책, p.238.
7)  문해진, 작가 노트
8)  오쿠이 엔위저는 ≪아카이브 열병: 동시대 미술에서 도큐먼트의 활용 Archive Fever: Uses of the Document in Contemporary Art≫를 통해 아카이브에는 분류 수납장, 오래된 자료들이 집적된 선반 등으로 대표되는 기본적인 아카이브 형식과 담론 생산으로 기능하는 활동적인 아카이브 방식이 존재하며, 동시대 미술가들은 후자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사진 황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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