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전 《제강이 춤을 출 때》

curating 2020년 3월 17일

일시: 2019.08.08~2019.08.17
장소: 갤러리175, 중간지점
참여작가: 문주혜, 박형진, 이도경, 조민아, 진희란, 689, AHA, 중간지점
기획: 윤여준
협력기획: 중간지점
디자인: 윤자영
사진: 박기덕
주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연구소

B.C. 3-4세기에 쓰여진 중국의 신화집 『산해경(山海經)』에는 여섯 개의 발과 네 개의 눈이 있는 닭, 하나의 머리에 열 개의 몸이 붙어있는 물고기, 머리가 없는 인간 등 150여 종의
생명체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중에 제강(帝江)이 있다. 여섯 개의 다리와 네 개의 날개가 달린 요괴, 제강은 얼굴이 없다. 아무것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어둠 속에서 제강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제강의 다른 이름은 혼돈(混沌/渾沌)이다. 마구 뒤섞여 있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혼돈은 마치 모든 감각이 차단된 채 춤을 추는 제강의 모습을 말하는 듯하다.

《제강이 춤을 출 때》는 제강이 어둠 속에서 춤을 추듯, 정박되지 않은 동시대 동양화를 탐구하는 작가들에게 주목한다. 장르와 전공, 매체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시대에, ‘동양화’의 유효성을 고민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분류되어있는 대학교육의 ‘전공’시스템 앞에서, 여전히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전통에 대한 고민 속에서, 동양화 작가라는
호명 뒤에서, 이 불분명함을 이야기할 지금ㆍ여기의 혼돈의 장이 필요했다.

본 전시는 동시대 동양화를 연대기적 역사의 연장선이 아닌, 차이와 구별로서 존재하는 한 층의 지층으로 바라본다. 지층으로서의 역사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개념으로, 그는 그의 저서 『말과 사물(Les mots et les choses)』에서 연속적인 인간의 행위가 만든 역사가 아닌,
한 시대ㆍ한 지역(1)의 고유한 인식들과 담론의 집합, 에피스테메(episteme)를 설명한다. 에피스테메는 일정한 시대의 문화적 구조와 인식의 지평을 가능하게 하는 하부요소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특정 시대의 역사적 과정에 내재해 있는 구조의 필연적 관계를 뜻한다.(2) 푸코의
역사관은 에피스테메에 의하여 각 시대의 지층을 형성하고,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와의 단절과 거부를 드러낸다. 앞선 것과의 차이가 존재의 이유가 되는, 다음의 것과 얼마나 다른지가 시대 간의 구별을 만들어내는 지층처럼, 동시대의 동양화 역시 과거의 역사적 흐름의 자연스러운 연장이 아닌, 그 자체의 에피스테메를 지니고 있다. 전시의 성격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되는 ‘동양화 작가’라는 구분, 장르의 벽이 허물어진 시대에 흥미로운 연구의 소재로 여겨지는 동양화의
‘특수성’, 이전 세대부터 정리되지 못한 명칭의 불명확성(3) 등 2019년의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동양화는 혼돈이라는 에피스테메를 지녔다. 그리고 《제강이 춤을 출 때》는 혼돈의 일부를 추출하여 전시라는 플라스크 위에 올려보는 시도이다.

《제강이 춤을 출 때》는 동시대 동양화에 대한 질문을 생산하는 전시 시리즈의 프로토타입으로, 다양한 표본들을 살핀다. 문주혜, 박형진, 이도경, 조민아, 진희란은 재료와 기법의 차원에서 동양화의 전통성을 꾸준히 유지하기도, 동양화의 맥락에서 벗어나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기도
동양화의 재료를 사용해 현대의 이야기를 그리기도 한다. 그리고 《제강이 춤을 출 때》는 그들의 작품을 경유하여 시공간을 부유하는 동양화의 동시대성에 대해 질문한다. 2019년도의 한국에서 ‘동양화’는 동양화과 전공자의 기술적 지지체가 될 수 있을까, 재료의 원산지에 따라 구별되는 하나의 장르일 뿐일까, 전통성을 고수하고자 하는 민족적인 유산의 한 줄기는 아닐까.

진희란은 전통 산수화를 고집하고 있다. 직접 산을 마주하며 관찰하고 전통재료와 기법을 사용하는 그의 작품은 동시대에 유효할 수 있을까. 이상적 산수를 그리기 위해 산행과 작업을 병행하는 그의 작업과정 속 수행성은 동시대 미술의 맥락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조민아는 노동 행위를, 자신의 상황을, 어느 지역의 청년집단을 무섭도록 단단하게 표현한다. 어쩐지 더 굳세어 보이는 조민아 작품의 기저에 검은 먹선이 주는 단단함이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과도한 해석일까. 문주혜는 그래픽 안에 존재하는 풍경과 인물을 동양화 재료로 그려낸다. 그는 켜켜이 색을 쌓는 동양화의 기법을 포토샵에서의 레이어 개념에 비유한다. 붓질이 마우스의 움직임을 떠오르게 했을까, 모니터 안의 작용이 붓질을 연상시켰을까. 이도경은 옛인물화를 모사(4)하고, 여성 어진을 그린다. 여성이 삭제된 역사적 기록 안에서 여성을 발굴하고 그려낼 때, 전통 인물화 기법으로 옛그림을 또같이 재현해낼 때, 우린 다시 먼지 쌓인듯한 ‘기운생동(氣韻生動)’이라는 단어를 끄집어 낼 수 있을까. 박형진은 우리 주변의 환경과 개발, 파괴와 일상에 대하여 말한다. 동양화에서 맑고 짙은 색을 내기 위해서는 색을 진하게 섞기보단 연한 색을 옅게 여러 번 쌓아야한다. 박형진의 작품 속에는 마치 여러 번 쌓인 듯한 일상의 모습과, 짙게 섞어 탁해져버린 파괴의 모습이 담겨있다. 맑음과 탁함, 농(濃)과 담(淡), 획과 여백, 우리는 박형진 작가의 초록앞에서 또 무엇을 연상할 수 있을까. 

하나의 장르를 콕 집어 말하는 것은 그 장르를 더욱 고립시키는 일일까. 어떻게 다른 장르와 구별짓지 않으면서 하나의 지층을 형성한 동시대의 동양화를 적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선택적으로 사용되는 동양화의 특수성은 특혜일까, 붙잡힌 발목일까. 《제강이 춤을 출 때》는 어둠 속으로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그리고 이 질문이 어둠 속 제강에게 보고 들을 수 있는 구멍을 뚫기 바란다. B.C. 3세기에 쓰여진 『장자(莊子)』에 등장하는 제강은 보고 들을 수 있는 구멍을
뚫자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진다. 혼돈에 구멍이 뚫린 동양화의 모습은 어떠할까. 제강처럼 죽어버릴까 혹은 구멍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춤을 출까.

(1) 푸코는 시간적 구조에 의한 에피스테메만을 설명했지만, 본 전시는 공간의 개념에서의 에피스테메를 포함한다. 동시대와 동아시아라는 지금과 2019년이라는 여기의 동양화가 지닌 지층의 의미를 탐구한다.
(2) 미셀 푸코, 『말과 사물』, 민음사, 2012, p.17, 옮긴이 주
(3) 동양화는 서양화에 대하여 상대적인 개념으로 등장한 단어이다. 서양화가 없었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단어인 것이다. 그 때문에 1970 년대와 80년대 동양화라는 단어를 한국화로 바꾸자는 주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동양화와 한국화를 둘러싼 명칭 논란은 이어졌지만 곧 매체를 나누지 않는 흐름이 등장하며 명칭 논란은 정리되지 못한 채 사라지게 된다.
(4) 동양화의 주된 개념 중에는 방(倣)이 있다. 고화품록의 육법(畵論六法)에는 선인의 작품을 본떠 그리는 ‘전이모사(轉移模寫)’이 있으며, 원본을 보고 베끼는 표현법을 ‘임모(臨摸)’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렇게 제작된 ‘방’ 혹은 ‘모사’ 작업은 하나의 작품으로 여겨진다.